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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료진이 되기 전까지 저희 엄마가 그렇게 오랫동안 빈혈을 방치하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생리 때마다 하혈하듯 양이 쏟아지고, 어지럼증에 복통까지 겹쳐 내내 누워 계셨는데도 그게 그냥 심한 생리통인 줄만 알았거든요. 이 글은 그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철결핍성 빈혈이 왜 여성에게 더 위험하고,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해야 하는지, 제가 직접 보고 겪은 이야기와 함께 풀어봅니다.
빈혈 증상, 그냥 피곤한 것과 뭐가 다를까요?
혹시 충분히 잤는데도 다음 날 또 기운이 없고, 계단 몇 칸에 숨이 찼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도 처음엔 엄마가 그냥 나이가 드셔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료진이 되고 나서 엄마를 직접 데리고 혈액검사를 했을 때, 헤모글로빈(혈액 속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 수치가 생각보다 훨씬 낮게 나왔습니다. 그때서야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죠.
철결핍성 빈혈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피로감입니다. 쉬어도 낫지 않는 피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느낌, 반복되는 어지러움과 두통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제가 현장에서 보면서 느끼는 건, 가슴 두근거림이나 답답함은 빈혈과 연결 짓지 못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점입니다. 어지럼증은 그나마 빈혈을 떠올리기라도 하는데, 두근거림은 그냥 스트레스려니 하고 넘겨버리거든요.
외형적인 변화도 신호가 됩니다. 피부가 창백해지거나, 머리카락이 갑자기 많이 빠지거나, 손톱이 잘 부러진다면 한 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집중력 저하나 무기력감도 철분 부족이 에너지 생성과 신경 기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문제는 이 모든 증상이 일상에서 너무 흔하다 보니 "요즘 좀 바빠서 그렇겠지"로 끝난다는 겁니다. 저희 엄마가 딱 그랬습니다.
과다월경이 있다면 더 위험합니다
왜 여성에게 철결핍성 빈혈이 더 흔할까요? 국내 데이터 기준으로 철결핍성 빈혈 환자 약 35만 명 중 여성이 남성보다 약 3배 더 많습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특히 30~40대 가임기 여성에서 비중이 높게 나타납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월경입니다.
정상적인 월경에서도 매달 철분이 혈액과 함께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월경량이 80mL 이상이면 의학적으로 과다월경으로 분류하고, 이 경우 철 손실이 훨씬 커집니다. 여기서 PBAC(pictorial blood loss assessment chart) 점수를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PBAC란 생리대가 얼마나 적셔졌는지, 덩어리 혈이 나왔는지 등을 점수로 환산해 월경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한 주기 총점이 100점을 넘으면 과다월경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저희 엄마처럼 월경 기간 내내 하혈하듯 양이 많고, 한두 시간마다 패드를 바꿔야 하거나, 손바닥 크기가 넘는 혈괴(혈액이 굳어 덩어리진 형태)가 반복적으로 나온다면 과다월경 신호입니다.
임신과 출산 시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임신 기간 중에는 태아 성장, 태반 형성, 산모의 혈액량 증가를 합쳐 약 1,000mL의 추가 철분이 필요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출산 과정의 출혈까지 더해지면 산후에도 철분 수치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이것이 산후 피로감이나 모유 감소, 기억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희 엄마 케이스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이 손실이 수십 년간 반복됐다는 점이었습니다.
- 월경 기간 7일 이상 지속
- 1~2시간마다 패드 교체가 필요할 정도의 출혈
- 손바닥 크기 이상의 혈괴 반복 배출
- 월경 기간마다 어지러움·피로감 심화
- PBAC 점수 100점 초과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병원에서 본 장면입니다
입원 환자를 보다 보면 수술을 앞두고 멀쩡하게 걸어서 들어오신 분이 입원 시 기본 혈액검사(CBC)에서 헤모글로빈이 뚝 떨어져 있는 경우를 제법 봤습니다. CBC란 complete blood count, 즉 혈액 내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 전반적인 수치를 한 번에 확인하는 검사입니다. 수치를 보고 저도 처음엔 "이 분이 어떻게 걸어 들어오셨지?" 싶었는데, 알고 보면 오랫동안 서서히 낮아진 거라 몸이 그 상태에 적응해버린 겁니다. 그리고 수술 전에 수혈을 먼저 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수혈이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수혈은 타인의 혈액을 직접 혈관으로 공급받는 행위입니다. 요즘은 사전에 항히스타민제를 투여하고 수혈 중 혈압을 자주 측정하는 등 부작용 프로토콜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래도 발열이나 알레르기 반응처럼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처치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다는 표현은 이 경우엔 맞지 않지만, 옆에서 수혈 부작용 케이스를 보고 나면 "집에서 조금만 일찍 오셨으면 됐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철결핍성 빈혈을 방치했을 때의 문제는 단순한 피로 누적에 그치지 않습니다. 장기간 지속되면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집중력 저하와 기억력 감퇴가 나타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체력이 더 떨어지고, 그 피로가 다시 활동 의욕을 떨어뜨리는 악순환 구조입니다. 임신 중이라면 태아 성장에도, 수술을 앞뒀다면 회복에도 직접 영향을 줍니다. 그냥 나이 들면서 체력이 줄어드는 것과 정말 다를 게 없어 보이기 때문에, 스스로 인지하기 더 어렵다는 게 이 질환의 함정입니다.
철분 치료, 먹는 약이냐 주사냐 — 어떻게 결정하나요?
철결핍성 빈혈이 의심된다면 병원 검사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금식도 필요 없는 기본 혈액검사로 헤모글로빈 수치를 확인하고, 빈혈이 확인되면 혈청 페리틴(ferritin) 수치를 추가로 봅니다. 혈청 페리틴이란 체내에 저장된 철분의 양을 반영하는 지표로, 이 수치가 낮으면 철분 저장량 자체가 고갈된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트랜스페린 포화도(transferrin saturation, 철분 운반 단백질인 트랜스페린에 실제로 결합된 철의 비율)도 함께 확인해 철 결핍의 정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치료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경구 철분제, 정맥 철분 주사, 수혈인데 상태에 따라 선택합니다. 경구 철분제는 비교적 가벼운 경우에 먼저 시도하지만, 수개월 복용이 필요하고 복통·변비·메스꺼움 같은 위장관 부작용이 적지 않아 도중에 포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맥 철분 주사는 페린젝트(ferric carboxymaltose) 같은 제제를 혈관으로 직접 투여하는 방법입니다. 페린젝트란 철분을 정맥으로 빠르게 공급해 흡수 과정의 제한 없이 체내 철 저장량을 보충하는 주사제입니다. 한 번 투여로 수백mL에서 최대 1,000mL까지 철분을 보충할 수 있고, 투여 시간은 약 15분 내외입니다. 2~4주 안에 헤모글로빈 수치가 의미 있게 회복됩니다. 제가 병원에서 보는 경우에도 경구제 부작용이 심하거나, 수술을 앞두고 빠른 보충이 필요하거나, 임신 중인 경우에는 정맥 주사가 훨씬 유용한 선택지가 됩니다. 수혈은 빈혈이 극도로 심해 즉각적인 교정이 필요할 때에만 제한적으로 씁니다. 수혈이 헤모글로빈 수치를 일시적으로 올려주는 건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철분 부족을 해결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후에도 반드시 철분 보충 치료가 병행돼야 합니다.
평소 관리 측면에서는 육류·간·해산물·콩류처럼 철분이 풍부한 식품을 꾸준히 섭취하되, 비타민 C와 함께 먹으면 흡수율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과다월경이 있거나 임신·출산 중이라면 식이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정기적인 혈액 검사와 의료진 상담이 필수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빈혈 증상인지 단순 피로인지 어떻게 구분하나요?
A. 충분히 쉬어도 나아지지 않는 피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느낌, 월경 기간에 어지러움이 심해지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단순 피로보다 철결핍성 빈혈일 가능성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금식 없이 간단한 혈액검사 한 번으로 확인이 가능하니, 참고 지내기보다는 검사 먼저 받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Q. 철분제를 먹으면 부작용이 심한데, 다른 방법은 없나요?
A. 경구 철분제의 복통·변비·메스꺼움 등 위장관 부작용은 꽤 흔합니다. 이 경우 페린젝트 같은 정맥 철분 주사를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약 15분 내외의 짧은 투여 시간에 한 번으로 많은 양의 철분을 보충할 수 있고, 위장관 부작용 없이 빠르게 수치를 회복할 수 있어 경구제가 맞지 않는 분들에게 좋은 대안이 됩니다. 의료진과 상담해서 본인 상황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시길 권합니다.
Q. 생리 양이 많은 편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A. PBAC(pictorial blood loss assessment chart) 점수를 활용하면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리대가 얼마나 적셔졌는지, 혈괴가 나왔는지 등을 매일 기록해 한 주기 총점을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총점 100점을 초과하면 과다월경을 의심할 수 있고, 이 경우 철분 손실이 크게 증가하므로 산부인과 진료가 필요합니다.
Q. 임신 중에도 철분 주사를 맞을 수 있나요?
A. 임신 중에는 태아 성장과 산모의 혈액량 증가로 철분 요구량이 크게 높아집니다. 경구 철분제로 충분히 보충이 어렵거나 부작용이 있는 경우, 의료진 판단 하에 정맥 철분 주사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임신 중 철결핍 상태가 지속되면 태아 성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적절한 치료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Q. 철분 수치가 낮으면 꼭 수혈을 해야 하나요?
A. 수혈은 빈혈이 극히 심해 즉각적인 교정이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수혈은 헤모글로빈 수치를 빠르게 올려주지만 근본적인 철분 부족을 해결하지는 못하므로, 이후에도 철분 보충 치료가 병행돼야 합니다. 수치가 낮더라도 상태에 따라 정맥 철분 주사나 경구 철분제로 충분히 대응 가능한 경우가 많으니, 조기에 발견할수록 수혈 없이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결론
저는 의료진이 되고 나서야 엄마의 수십 년 된 증상이 철결핍성 빈혈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게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생리할 때마다 하혈하듯 양이 쏟아지고, 더운 날 조금만 걸어도 어지럽다고 했던 그 신호들을 더 일찍 알아챘더라면 하는 생각이요.
피로감, 어지러움, 두근거림, 손톱이 잘 부러지는 것. 이 증상들이 반복된다면 그냥 체력이 떨어져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특히 월경량이 많거나 임신·출산을 앞두고 있다면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검사 자체는 금식도 필요 없는 간단한 혈액검사입니다. 지금 당장 증상이 의심된다면, 오늘 당장 검사 예약을 잡아보시는 게 어떨까요.